"못읽은 책 읽고 왕중왕전 준비… 방송대도 도전"
매일 2시간 신문정독 한달에 책 30권 읽고 2년간 메모노트 50권[조선일보 허윤희, 김용국 기자]
지난 17일 방송된 KBS ‘퀴즈대한민국’에서 역대 최고령 퀴즈영웅으로 등극한 박영자(55·사진) 주부가 또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야간상고를 졸업한 박씨는 27일 기자에게 “
방송통신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박씨는 또 “혹시 연말에 왕중왕전 같은 행사가 있을지 몰라 다시 (퀴즈공부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번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그녀는 퀴즈영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박씨는 “그동안 못 읽은 책도 부지런히 읽을 거예요”라며 “
다빈치코드부터 읽을래요”라고 말했다. 집앞에 있는 시립도서관 카드도 새로 만들었단다. “요즘 나태해지지 말자고 더욱 다짐하고 있어요.”
돌이켜 보면 고난의 세월이었다. 1998년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그녀가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통닭집, 만화가게, 속옷가게, 행상에 간병인까지, 안 해 본 일이 거의 없다. 책 한 권 살 돈도 부담되던 시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한 달에 30여권의 책을 빌려 읽었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면서, 간병을 하는 틈틈이 그녀는 읽어 나갔다.
“제가 퀴즈 내공이 10년이에요. 주부 대상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 살림살이 다 장만했죠. 웬만한 프로에는 다 나갔어요.” 책 읽고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서 퀴즈는 자신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쟁쟁한 학식의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는 ‘
퀴즈 대한민국’만큼은 계속 떨어졌다. “세 번째 떨어졌을 때, 작가가 ‘이번에 떨어지면 또 나오실 거예요?’ 하는데, 바짝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왜 증명사진 한 번 찍으면 7장 나오잖아요. 그거 다 쓸 때까지 나올 거라고, 2장 남았다고 그랬죠.” 그때 박씨는 돌아서서 입술을 깨물었다. 활자로 된 모든 것을 읽어치워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루에 2시간씩 신문을 정독하고, 상식책을 훑으며 모르는 내용을 메모했다. 이렇게 쌓인 노트가 50여권. 2년여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큰 성취를 했지만, 그녀에겐 도무지 쉼은 없는 듯했다.
‘영웅’으로 지낸 열흘. “마치 꿈을 꾼 것 같다”는 박씨는 이제 유명인사다. “가는 데마다 알아봐요. 헬스클럽에 가도 ‘퀴즈 아줌마 아니세요?’ 하고, 교회에 가도 ‘신문봤다’고 반가워해요. 너무 민망해서 원….”
박씨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하나 털어놓았다. 퀴즈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맞힌 마지막 문제(이슬람의 전통적인 송금 시스템인 ‘하왈라’를 맞추는 내용)는 작은아들 덕이었다는 것. “아들이 공기업 시험 준비한다고 스터디할 때, 스터디 그룹에서 만든 문제를 파일로 모아놓곤 했어요. 하루는 아들 책상을 청소하다가 파일을 발견했는데, 거기 그 문제가 있었지요. 모르던 거라서 ‘이런 게 다 있네…’ 하고 노트에 메모해 뒀습니다.”
박씨가 이 땅의 아줌마들에게 응원가를 불렀다. “인생에는 굴곡이 있어요. 지금 힘들어도 끝까지 희망을 붙들고 있으면 좋은 날 옵니다.” 대한민국 아줌마들 파이팅!
(허윤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ostinato.chosun.com])
(사진=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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